1. 이야기의 바탕이 된 일본 설화, 타케토리모노가타리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타카하다 이사오가 감독을 맡아 제작하고 2013년도에 방영한 작품인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래동화인 타케토리모노가타리(대나무꾼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약 10세기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인 타케토리모노가타리는 타케토리(대나무 장수)할아범과 그의 아내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골에 사는 두 부부는 타케토리 할아범이 대나무를 베어오면 아내가 바구니를 만들어 팔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케토리 할아범은 대나무 숲에서 하얗게 빛나는 대나무를 발견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빛나는 대나무를 베어보니 그 안에는 손가락 크기만한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자태가 매우 곱고 신비로워 타케토리할아범은 데려와 딸로 삼기로 한다. 이후 타케토리 할아범이 대나무를 벨 때마다 그 안에서 돈이 나왔고 부부는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 대나무에서 나온 여자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3일만에 혼례를 치러야 할 나이가 되었다.
타케토리 할아범은 이무베노 아키타라는 사람에게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아키타는 여자아이가 너무 아름다워 빛이 난다며 반듯한 대나무의 빛나는 공주라는 뜻의 나요타케카구야히메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명명식이 끝나고 타케토리 영감은 성대한 잔치를 벌여 카구야공주를 축하했고 그 미모에 대한 소문이 금새 퍼져 수도에 사는 다섯 명의 귀족들이 카구야공주에게 구혼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혼할 마음이 없었던 카구야공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들을 구해오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귀족들의 구혼을 거절한다. 다섯 명의 귀족은 어떻게든 카구야공주와 결혼하고 싶어 동분서주하나 성공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마침내 카구야공주의 미모는 천황에게도 전해졌다. 천황은 몰래 카구야공주의 거처에 방문했으나 공주가 일순 자취를 감추어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자 천황은 단념하였다. 그러나 천황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된 카구야공주는 단가를 주고 받으며 천황과 친구로 지내게 된다. 시간은 흘러가고 카구야 공주는 밤하늘의 달을 보며 때때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8월의 보름날이 다가오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타케토리 할아범과 아내가 그 이유를 묻자 카구야공주는 자신은 원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며 연이 닿아 잠시 지상에 머물렀으나 이번 보름에 달나라에서 자신을 데리러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에 천황은 카구야공주의 집에 군대까지 동원하여 지키게 하나 달에서 사람들이 내려오자 저항의지를 상실한다. 카구야 공주는 부정한 기억을 지우는 날개옷과 불사의 약, 그리움을 담은 시를 천황에게 선물하고 떠났지만 천황은 공주와의 이별에 슬퍼하여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불멸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불사의 약을 스루가노쿠니(지금의 시즈오카현)의 하늘과 제일 가까운 산에 가서 태우라고 신하에게 명했다. 그 장소는 오늘날의 후지산이 되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유가 되었다.
2. 수채화풍의 미려한 작화와 따뜻한 색감, 잔잔하고 아름다운 배경음악
스튜디오 지브리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붓으로 그린 듯한 수채화풍의 그림체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작품의 초반~중반부까지 펼쳐지는 카구야공주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보는 이마저 웃음짓게 만드는데 의상과 배경에서 자주 나오는 벚꽃의 따뜻한 색상과 어우러져 순수한 카구야공주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OST의 명가인 스튜디오 지브리 답게 카구야 공주가 연주한 거문고의 아름다운 선율과 잔잔한 배경음악은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3. 공주가 지은 죄와 벌이란 무엇인가
공주가 지은 죄와 벌이란 문구가 포스터에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카구야공주는 어릴 적 대나무 장사꾼의 손에 자라며 동네아이들과 어울려 소박하고 평범한 시골아이로 성장하지만
타케토리 할아범은 금지옥엽 곱게 키워 어엿한 공주님처럼 만들어주는 것이 하늘의 계시이며 카구야공주를 행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공주의 소박한 행복과는 반대되는 요구를 강압하게 된다. 이에 점점 웃음을 잃게 되고 결국엔 황제의 무례한 구혼에 카구야 공주는 이 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소원을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빌게 된다. 작품의 후반에 카구야공주의 독백으로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원래 달의 세계에 머물고 있던 그녀는 지상에서 달의 세계에 온 사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지상으로 내려가길 바라게 된다. 그 염원이 닿아 카구야공주는 지상에 머무르게 되었으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강요와 억압만이 가득한 삶을 지내면서 지상생활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다시금 달의 세계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만 것이었다. 카구야공주를 데리러 오기 위해 달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내려온 마지막 순간, 카구야공주는 부모님을 껴안고 울며 지상세계에서의 좋았던 추억에 천계로의 회귀를 거부한다. 하지만 천계인은 떠날 시간이라며 카구야공주에게 날개옷을 입혀주고, 카구야공주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잊은 채 천계인들과 달의 나라로 떠나버리고 만다.
떠나는 한 순간 정신을 차린 카구야공주는 뒤를 돌아보게 되고 지상세계를 바라보며 눈물에 젖지만 이내 다시 기억을 잊어버리고 만다.
결국 공주가 지은 죄와 벌은 무엇이었을까.
천계인의 노래를 듣고 지상세계를 동경한 죄를 지어
그렇게 도달한 지상세계에서 일순의 행복을 누리지만 결국 불행을 겪게되는 운명이 카구야공주에게 주어진 벌이라면
너무도 가혹하지 않나 싶다.
돌아간 천계에서 만약 언젠가 다시 지상세계에 내려갈 수 있다면
카구야공주가 평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정 마음 속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