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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의미 (복수심, 딸, 인남)

by 누리마루 동산 2025. 4. 23.

한국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포스터사진

 

 

2020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제목은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6장 9~13절에 나오는 주기도문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이 영화는 누아르 액션 장르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감정의 깊이와 철학적 주제를 성공적으로 담아낸 한국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 인남과 레이의 대립을 중심으로 복수라는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한 액션 장면이 아닌,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본능,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 교차하면서 작품의 무게감을 더합니다. 특히 복수심과 가족애, 인간성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이 작품은, “복수는 결국 무엇을 낳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복수심의 탄생과 추동력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정은 단연 ‘복수심’입니다. 이 감정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닌, 인간 본연의 깊숙한 내면에서 비롯된 본능적 반응으로서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동력입니다.

 

인남이라는 캐릭터는 전직 청부살인업자로서, 그간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내고도 감정 없이 살아가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남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자신도 몰랐던 ‘딸’의 존재와 그녀의 납치입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려는 것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얽힌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복수는 곧 자책이며 회복입니다. 인남은 자신의 삶에서 피했던 감정을 복수를 통해 다시 직면하게 되고, 이 복수는 단순히 가해자를 제거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정화하는 과정이 됩니다. ‘구하소서’라는 제목처럼, 그는 누군가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도 구원받고자 합니다. 이 복수는 자비 없는 총격전과 처절한 육탄전으로 표현되지만, 그 이면에는 인남의 깊은 고뇌와 혼란이 담겨 있습니다.

 

레이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의 얼굴입니다. 그는 자신의 형을 죽인 인남을 쫓으며, 순수한 증오만을 품고 움직입니다. 그 어떤 윤리적 기준도 없이, 철저히 감정에 의한 파괴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레이는 인남과 정반대의 복수 모델을 보여주며, ‘복수’라는 감정의 양면성을 극대화합니다. 이러한 캐릭터 간의 대비는 관객에게 복수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하며, “과연 정의로운 복수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딸이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인남이 자신의 딸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감정 없이 살아가던 인남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지키고자 할 때, 그 감정은 단순한 복수심에서 책임과 사랑, 그리고 인간성으로 확장됩니다. 딸의 존재는 인남에게 있어 복수의 동기가 아닌,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자 목적이 됩니다.

 

딸은 이야기 구조에서 ‘순수함’과 ‘희생’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인남이 복수를 계획하면서도 딸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모습은 그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완전히 잃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딸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이자,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가능성의 상징입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다시 배우고, 과거를 정리할 힘을 얻게 됩니다.

 

인남의 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이끌어가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관객과의 깊은 유대를 형성합니다. 인남이 딸과 함께 있는 짧은 순간들, 딸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들은 모두 ‘아버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그에게 부여합니다. 이 과정은 인남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보호자로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딸은 인남의 복수를 인간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존재입니다. 관객은 딸을 향한 그의 감정에 공감함으로써, 복수가 단순한 폭력이 아닌 생존과 보호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딸이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의 정서적 무게를 극대화하며, 인남의 여정에 진정성을 더합니다.

 

 

인남의 내면과 존재론적 갈등

인남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넘어, 깊은 철학적 고민을 내포한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의 어둠을 짊어진 채 살아가면서, 인간성을 버리고 살았다고 믿었지만, 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며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인남은 내면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인남은 극의 시작에서는 냉혹하고 철저한 살인자로 그려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적인 모습을 하나씩 되찾아갑니다. 그는 말이 없지만 눈빛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진폭은 매우 큽니다. 인남의 복수는 단순한 감정의 발현이 아닌, 존재론적인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며, 이는 그의 표정과 행보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는 점점 더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며,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는 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습니다. 이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참회이자 속죄의 표현입니다. 복수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순간, 인남은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폭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되짚고, 복수의 윤리적 의미를 다시 조명하게 됩니다.

 

결국 인남의 여정은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처벌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자신의 딸에게는 다른 삶을 열어주려 합니다. 이로 인해 영화는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복수’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단순히 상대방을 제거하는 액션이 아닌, 감정의 정화와 존재의 재정의를 담은 복수는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인남의 여정은 한 인간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자, 자신의 죄를 딸을 통해 용서받고자 하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복수는 악을 없애는가, 아니면 또 다른 악을 낳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보다는,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