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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by 누리마루 동산 2023. 7. 2.

 

1. 비행기를 사랑한 소년

 

모두가 깊이 잠든 밤, 소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꿈을 꾸고 있다.

어스름한 새벽녘 지붕 위에 올라가자 조그만 경비행기가 있었고 그 위에 올라탄 소년은 능숙하게 시동을 걸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을의 푸른 논밭을 가로질러 구름 위까지 날아오르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진다. 문득 구름 속에서 기묘한 검은 물체와 함께 나타난 거대한 비행선을 보자 소년은 고글을 껴보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다. 고글을 벗어던지느라 허둥대던 소년의 비행기는 검은 물체와 부딪혀 반파되고 소년은 추락하고 만다.

 

꿈에서 깨어 흐릿한 시야 사이로 안경을 집어든 소년은 이불을 정리한 후 학교로 향한다. 소년은 학교에서 영어로 적힌 비행기잡지를 빌리고 흐뭇해하며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동급생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하급생을 발견하고 구해준다.

 

소년의 이름은 호리코시 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비행기가 너무나도 좋은 소년이었다. 어린 여동생 카요가 놀아달라고 떼를 써봐도 비행기잡지만 보고 있을 정도로 그는 비행기에 푹 빠져있었다. 그날밤 지로는 지붕 위에 올라가 별이 한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곳에 있는 별을 바라보면 눈이 좋아진다며 어느샌가 옆에 와있는 카요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이탈리아의 비행선이 하늘을 가득 메운 장면을 보게 된다. 꿈의 세계에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비행기 설계사 카프로니 백작과 만난 지로는 근시때문에 비행기를 조종할 수는 없을지라도 설계는 할 수 있다는 백작의 확신이 담긴 격려를 듣고 꿈에서 깬다. 이날부터 지로는 비행기 설계사를 꿈꾸며 성장해나간다.

 

2. 그런 소년을 사랑하게 된 소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한 지로는 항공연구소가 있는 학교로 가기 위해 기차에 탑승한다.

 

만원이 된 기차 안에서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 지로는 객실 밖으로 나와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그때 옆 칸에서 모자를 쓴 귀여운 소녀가 나타나 상쾌한 바람에 감탄한다. 지로가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 지로의 모자가 날아가버린다. 소녀가 지로의 모자를 가까스로 잡아채다 떨어질 뻔하자 그녀의 시녀와 지로가 깜짝 놀라 붙잡는다. 모자를 잡아준 소녀에게 지로가 감사의 인사를 하자 소녀는 미소를 띠며 프랑스어를 한 마디 건네고, 지로가 웃으며 그 다음의 문구를 이어 답해준다. 소녀가 객실로 들어가자 지로는 홀로남아 방금 주고 받았던 프랑스의 유명한 시를 되뇌어본다.

 

- 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 -

- 바람이 분다, 살아야만 한다. -

 

마을의 선로를 따라 달리던 도중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마을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기차가 거의 탈선할 뻔하자 승객들은 극도의 혼란에 휩싸여 기차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지로는 아수라장이 된 기차 옆에 서 있다가 뒤편에 주저앉은 소녀와 그녀의 시녀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뼈가 부러져 걸을 수 없는 시녀의 다리에 지로는 계산자를 부목대신 묶고난 후 업어서 소녀의 집으로 향한다. 쉬어가려 잠시 멈춘 곳에서 소녀는 집에 가서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하고 지로가 그녀와 함께 가기로 한다.

 

혼잡스러운 마을을 달려 드디어 둘은 소녀의 집에 도착하고 지로는 시녀가 있는 곳까지 가신들을 안내한다. 시녀를 무사히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가신들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이름을 물어보지만 지로는 괜찮다며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알지도 못한 채 지로와 소녀는 헤어지게 된다. 

 

3. 바람이 맺어준 두 사람의 인연과 아름답고 슬픈 사랑

 

지로가 꿈에서 다시 만난 카프로니 백작은 마지막 은퇴 비행식을 하던 중 인간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라며 앞으로의 10년을 최선을 다해 살라며 격려한다.

 

이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비행기 설계사로써 착실히 경력을 쌓은 지로는 설계팀장으로 전투기의 비행테스트를 맡게 된다. 테스트를 위해 머물던 마을을 걷던 지로를 언덕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이 발견하는데 돌연 강풍이 불어 그 여인의 파라솔이 날아가고 지로는 가까스로 잡아채 그녀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지로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자 여인은 서운함을 애써 감춘다.

 

이후 식당에서 다시 마주쳐 서로 인사를 건네지만 지로는 여전히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날 지로는 들판을 산책하다 오솔길의 입구에 놓인 그림도구를 발견한다. 길을 따라가다 도착한 샘물에서 여인과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윽고 그녀가 기차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자 지로는 비로소 그녀가 모자를 잡아줬던 소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인의 이름은 사토미 나오코. 10년간 지로를 잊지 않고 있던 소녀였다.

 

지로는 설계사의 업무를 착실히 수행하는 한편 나오코와 사랑을 키워나간다.

어느날 식당에서 열린 파티에서 지로는 나오코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며 따님과의 교제를 허락해달라고 한다. 식당에 나타난 나오코가 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지로는 개의치않고 그녀를 사랑한다며 청혼한다. 나오코는 이 병이 나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며 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지로가 어릴 때부터 마음 속에 그려왔던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비행테스트까지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그에게 전보가 도착한다. 나오코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전보에 지로는 지체없이 출발해 저녁무렵 그녀의 집에 도착한다. 기력이 쇠하여 병상에 누워있던 나오코는 정원으로 들어오는 지로를 보고 화색을 띈다. 해후의 감격도 잠시, 지로는 일을 마치기 위해 자리를 나서고 그런 지로를 보고 나오코는 반드시 나아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고원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기로 한다.

 

지로가 계획한 결과물이 점점 가시화되어가는 가운데 고원의 병원에 입원한 나오코는 지로의 편지를 받고 그를 보기 위해 병원을 떠난다. 나오코를 데려온 지로는 자신의 상사 쿠로카와에게 신세를 지기로 부탁한다. 자신들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둘은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서로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는 둘에게 돌연 지로의 여동생 카요가 방문한다. 의사가 된 카요는 나오코의 착하고 예쁜 성품에 반해 그녀를 살리고 싶다면 다시 고원의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며 울며 지로에게 부탁하지만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며 거절한다. 

 

 

이윽고 지로가 설계한 비행기를 띄우는 날, 나오코는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지만 그가 집을 나서자 슬픈 표정을 짓는다.

나오코의 진찰을 위해 집을 향하던 카요는 그녀가 남긴 편지를 발견하고 그녀를 데리러 가려하지만 상사의 부인의 만류에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푸른 들판, 지로가 설계한 비행기는 훌륭한 비행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테스트를 마친다.

 

꿈 속에서 지로는 카프로니 백작과 다시 만난다. 카프로니 백작이 10년간은 어땠느냐고 묻자 지로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가 전쟁이라는 목적에 쓰여 한 대도 돌아오지 못하고 사라졌다며 한탄한다. 카프로니 백작은 그런 지로를 위로하며 그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한 곳을 가리킨다.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들판에서 서 있던 나오코가 말한다

"당신은 살아가세요, 살아야 해요"

지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오코는 웃으며 그녀의 우산과 함께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카프로니 백작은 바람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며 읊조리고

자네는 살아가야만 하네라는 말과 함께 와인을 한 잔 권유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4.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

 

작품에 등장하는 호리코시 지로는 일본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는 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그와 동시대의 인물인 소설가 호리 타츠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 와 '나오코' 에서 내용을 참고하여 만든 이야기이다. 

 

바람이 분다는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린 한 편,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 이룬 형태인 비행기를 전쟁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어두운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을 만들며 반성적인 입장을 보인 기록들도 많다.

 

다양한 요소가 등장하여 시사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안에 등장하는 지로와 나오코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를 잘 표현한 멋진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