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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가 인간의 능력과 운명을 결정짓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SF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우성 유전자에 대한 맹신, 그리고 열성 유전자에 대한 편견이 어떻게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지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시대일수록 '우성 유전자 = 뛰어난 인간'이라는 단순화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성 유전자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정리하고, 가타카 속 설정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과장되고 왜곡되었는지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우성 유전자의 과학적 정의와 일반 오해
현대 유전학에서 ‘우성 유전자(dominant gene)’는 다른 유전형질을 덮어쓰는 형질 발현 특성을 가진 유전자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갈색 눈 유전자가 파란 눈 유전자보다 우성이라면, 두 유전자가 동시에 있을 때 갈색 눈이 발현됩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표현형(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에서의 우선 발현일 뿐, 절대로 우성 유전자가 '더 우수하거나 더 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화 가타카에서는 우성 유전자가 마치 엘리트 유전자처럼 묘사됩니다.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열성 유전자 인간'이며, 그의 신체적 조건은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간주됩니다. 반면, 그의 동생 안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우성 유전자 인간'으로, 모든 면에서 형보다 뛰어난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성 유전자가 더 유리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병 중에서도 ‘헌팅턴병’은 우성 유전 질환입니다. 이 질병은 중추신경계의 퇴행을 유발하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반대로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은 열성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지만,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주기도 합니다.
즉, 어떤 유전자가 우성인지 열성인지는 단지 유전 형질의 표현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의 '좋고 나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능력은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수많은 유전자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환경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영화 속 설정처럼 '좋은 유전자만 선택해 우수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단순화된 접근이며, 실제 생명과학의 관점에서는 현실성이 낮습니다.
가타카의 유전자 설계 사회: 진실과 과장 사이
영화 가타카에서 묘사된 유전자 기반 사회는 극단적인 ‘유전 결정론’ 세계입니다. 태아 단계에서부터 우성 유전자만 선별해 탄생한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모든 혜택을 받고,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불순한 유전자’로 취급되며 차별받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 윤리적 문제를 강하게 풍자합니다.
하지만 실제 과학 기술은 영화와 달리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Cas9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정밀성, 안정성, 예측 불가능성 등의 문제로 인해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제한적입니다. 특정 유전자를 편집한다고 해서 원하는 능력이나 성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후천적인 교육과 환경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우성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거의 완벽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인간은 유전적 '결함'을 일정 수준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오히려 인류의 다양성과 진화에 기여해왔습니다. 빈센트는 태어날 당시 심장질환 가능성과 기대 수명이 짧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지만, 끝내 우주 비행사로서 자신의 꿈을 이뤄냅니다. 이는 유전 정보만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또한, 영화는 유전자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 편견, 신분 고착화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게노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과학 용어가 아닌, 새로운 사회 계급이 되는 것이죠. 가타카는 이를 통해 유전자 중심 사회가 어떤 윤리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성 유전자의 맹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우성 유전자를 ‘우수함’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은 실제 사회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부모들이 아이의 키, 피부색, 외모, 심지어 지능까지 유전적으로 설계하고자 하는 욕구는 생명윤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라는 용어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타카는 이런 사회적 욕망이 낳을 수 있는 결과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우성 유전자에 대한 맹신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게 만들며,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특정 유전 형질이 우성이라고 해서 그게 항상 사회적으로 유리하거나 뛰어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유전자는 시간에 따라 표현되는 방식도 달라지고,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결과가 달라지므로, 단일한 기준으로 인간을 ‘우성/열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부정확합니다. 이러한 유전자 우월주의는 마치 과거의 인종주의나 우생학(eugenics)과도 유사합니다.
역사적으로 우생학은 수많은 비윤리적 실험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분명히 경계되어야 할 사상입니다. 가타카는 이러한 과거의 그림자를 미래의 기술에 투영시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주인공의 도전은 유전자 외의 요소들, 즉 의지, 노력, 환경, 인간성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빈센트가 우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후천적 요인들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우성 유전자만으로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성 유전자는 결코 ‘우월한 유전자’가 아닙니다. 영화 가타카는 유전 정보에 대한 오해가 사회적 불평등과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과 윤리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유전자에 대한 인식을 보다 올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DNA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과 후천적 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때입니다.